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송역/역 설치 및 호남고속선 분기역 선정 논란 (문단 편집) == 제1막: [[KTX]] 노선 선정과 오송유치위의 [[폭탄 테러]] 협박 == 당초 [[오송역]]은 [[KTX]]를 계획하기 십여 년도 전인 [[1983년]]에 이미 여객취급이 중단된, '''화물취급용 [[간이역]]'''이었다. [[경부고속선]] 건설 계획 원안에서는 [[연기군]]의 서남쪽, 즉 현재의 [[행정중심복합도시]]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도록 건설할 예정이었다. 물론 세종시는 경부고속선이 개통된 후 2000년대 [[참여정부|노무현 정부]] 당시에야 처음 계획된 것으로 당연히 역 신설계획은 존재하지 않았다.[* 구 연기군 주민들은 이와 관련해서 원래 조치원역에 KTX가 정차하려던 것을 오송이 뺏어갔다고 아는 경우가 많은데 원래는 조치원도 무정차로 통과할 예정이었다. 물론 오송이 아니라 조치원 정차였으면 적어도 명분은 확실했을 것이고, 실리 면에서도 오송보다 더 나았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청주 쪽에서 굳이 열차를 이용하려면 조치원역을 주로 갔으니 그렇게 거부감이 들 위치도 아니겠으나, 다만 청주시내<->수도권 이동 역할을 하는 데에는 지금의 오송역보다 더 불리하다.] 당시 이와 같은 고속철도 노선 결정에 대해 청주·청원 지역 사람들은 상당한 불만[* 이러한 불만에는 당시 충남에 비해 현저하게 부족했던 교통·산업 인프라와 과거 신공항 건설 계획 발표 당시 청주로 결정됐다가 서해안 간척지([[영종도]])로 [[인천국제공항|변경됐던 전례]]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을 표출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현재의 포항발 KTX와 유사하게 지선을 건설하여 운행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청사모라는 이름을 내건 청주지역의 유지들이 경부고속전철 본선역 유치위원회를 결성하고 나서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만약 원안대로 추진되는 경우에는 고속선이 충북에는 조금도 걸치지 않았기 때문에, 지역소외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충북 영동군에 걸치긴 한다. 단지 역이 없을 뿐이지.~~] 우선 [[1992년]], 원래 노선상에 있는 터널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 당시에 14대 대선을 앞두던 시기였는데 지역 민심이 험악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건설교통부 장관 등을 불러 기존 지선 계획에 대해 재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1993년]] 당시 건설교통부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원안을 수정해 당초 연기군을 통과해 갑천을 따라 대전으로 가는 노선을 충북 오송을 거쳐 신탄진 쪽으로 향하도록 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이상록 오송유치위 위원장과의 [[http://www.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17196|2010년 10월 14일자 인터뷰 기사]]와 같은 해 10월 28일자 [[http://www.youtube.com/qGQ7Z1CGxSk|인터뷰 동영상]]을 참고할 것.] 물론 이 과정에서 선형이 변형되기는 했으나 [[호남고속선]]에 비하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위의 그림에서 천안아산 - 대전 간 선형을 과장해서 그려서 그렇지, [[경부고속선]] 입장에서는 원안인 조치원이나 현 오송역이나 거리나 선형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위의 천안아산 분기안에서 천안아산 - 조치원(세종) - 대전 구간을 일자형에 가깝게 그렸지만, 해당 구간의 실제 계획안은 현 천안아산 - 오송 - 대전 구간과 R(곡률) 값이 별 차이가 없었다. 즉 아래에서 나중에 꺾느냐(조치원), 위에서 먼저 꺾느냐(오송)의 차이였을 뿐이다. 정말로 천안아산 - 대전 사이를 직선으로 가기 위해서는 조치원과 오송 간 정중앙을 지나가야 했었다. 그렇다고 실제로 정중앙에 지었다간 [[양양국제공항]]이나 [[공주역]]의 사례처럼 버스로의 [[환승저항]] 때문에 수요가 반토막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역을 안지으면 되지~~] 또 [[청주시|청주]]는 엄연히 [[충청도]]에서 [[대전광역시|대전]] 다음 가는 대도시이도 했고, 그 오송 근처에는 국가적 기능을 수행하는 대학인 [[한국교원대학교]]가 자리하고 있어, 큰 수요는 아닐지언정 역 설치에 명분도 전혀 없다 할 수는 없었다. 진짜 문제라면 시위 과정에서 유치위 측이 '''부강 - 신탄진과 부강 - 내판간 협곡에다 3톤트럭에 폭탄을 실어 폭파시키겠다'''고 [[협박|서면으로 보낸 것이다.]] 유치위는 "[[자기합리화|절박한 심정이 표출된 것이었다]]"며 스스로를 변호했지만 엄연한 공공시설에 대한 '''테러 협박'''이었으며 '''가장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핌피현상이었다.''' 원래라면 이 행위 자체로도 모든 교섭을 중단할 빌미가 될 뿐만 아니라, [[공무집행방해]], [[폭발물사용예비음모등죄]], [[살인미수|살인미수죄]]로 체포, 구속할 수 있으며, (실제로 실행됐다면) 교통 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었던거 뿐만 아니라 무궁화호등 같은 여객 열차가 실제 폭파할 경우 그 피해가 그대로 발생해 승객 모두 사상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실제 폭파시 철도 수송 마비가 발생할 수도 있다. [* 실제로 시행됐으면 군부대 투입해서 초강경진압과 주동자 사살도 합법이 된다.] 그런데 이런 범죄적 행위에 대해 이상록 추진위원장은 [[2010년]] 중부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개소리|"'''지금도 가슴 뭉클한 한편의 대하드라마'''"]] 라며 촌평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상록 추진위원장은 2015년 1월에 사망했다. [[호남고속선]] 오송역이 2015년 4월에 개통한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에서 충북을 배제한 채 조치원 서쪽 4-5㎞쯤에 위치한 금남으로 돌아가는 안을 주장했다. 추진위에서 건교부에 수차례 항의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이 때문에 나와 박종원(전 한국병원이사장·작고) 부위원장이 오송분기역으로 하지 않으면 부강-신탄진과 부강-내판간 협곡에 3톤 트럭으로 폭탄을 실어 폭파시키겠다며 공공시설물이 파괴되지 않도록 재고하라고 서면으로 요구했다. 감옥에 갈 각오로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했지만 당시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 >이상록 오송유치추진위원장과의 인터뷰 中[br]{{{-2 ([[http://www.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17196|"지금도 가슴 뭉클한 한 편의 대하드라마" 2010.10.14일자 중부매일신문, 박상준 기자]] [[https://archive.fo/wPmke|@]])}}} 사실, 오송역이 경부고속선 중간 정차역 중 하나로만 끝났으면 이 문서가 길어질 이유도 없었고, 이렇게까지 크게 욕을 먹지도 않았을 것이다. 뭐, 자기 도시에 KTX를 세워달라는 요구는 우리나라에 차고 넘치니까. 그래서 오송역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 중엔 거꾸로 선로가 좀 더 동쪽으로 휘더라도 청주시 수요를 더 확실하게 잡기 위해 최대한 스무스하게 틀어서 강내면이나 강서1동 일대에 역을 세웠다면 어땠을까 상상하는 사람도 있다. 오송역이 욕을 먹는 가장 큰 이유는 호남고속선의 분기역 선정 및 테러 협박 때문이지 경부고속선의 오송역 정차 자체는 비교적 비판이 덜한 편이며 오히려 여기까지는 타당한 주장이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오송역의 수요가 적으면 그만큼 정차 편수를 줄이면 해결되는 문제고, 호남고속선을 배제하면 오송역이 경부고속선 자체에 끼친 영향은 의외로 크지 않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